단국대학교(檀國大學校, Dankook University)는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의 사립 종합대학이다. 1947년 11월 1일 설립인가를 받아 3일 후 1947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개교하였다. 당시 문교부 기록에 따르면 단국대학교는 광복 이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사립 4년제 대학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7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 1967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종합대학교로는 최초로 1978년 3월 13일 제2캠퍼스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설립했다. 1984년 치과대학 부속병원을, 1994년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개원하였고, 남산 고도제한으로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의 협소한 교육공간을 해소하기 위해 2007년 8월 30일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로 이전하였고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단국대학교 수지캠퍼스가 되었다.현재 단국대학교는 단국대학교병원,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부속치과병원,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단국대학교부속소프트웨어고등학교를 포함하여 대규모의 부속시설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죽전캠퍼스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의 천안캠퍼스로 변화해 캠퍼스 내에서 외국인과 함께하는 ‘DKU ISS’를 통하여 글로벌 캠퍼스로 탈바꿈, 세계 각국의 유학생을 유치하면서 2014년부터 본교 죽전캠퍼스와 분교 천안캠퍼스를 통합해 이원화캠퍼스로 운영하고 있다.
약칭은 단대(檀大)이고 상징 동물은 검은곰, 교목은 느티나무이며 교화는 철쭉이다. 또한 교색은 청색이며 교훈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구국·자주·자립이다. 교기의 전통색깔로 상징되는 오색의 이미지마크는 동양사상의 주축인 천·지·인 사상을 주제로 하여 하늘과 땅·인간·합일을 표현한 것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 됨을 통해 우주의 원리로 공존과 화합, 융화와 소통으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태동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한국은 광복 후 군정기를 거쳐 정부가 수립되는 3년 간 고등교육계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막혔던 둑이 터지듯 새로운 교육행정의 체계에 국립 대학을 중심으로 사립 대학들이 새로 설립되거나 정식 설립 인가서를 제출하는 등 대학 승격이나 설립 움직임이 봇물을 이루었다.이에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항일 독립운동가로 열강에 의하여 분단이 되는 비극을 지켜본 설립자 범정 장형과 혜당 조희재는 조국과 겨레의 독립에 의한 미래는 결국 민족애에 뿌리를 둔 인재양성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광복후 당당한 독립국가로 단군 이래 나라와 종교가 함께 하던 정교의 최고 이념이며 한민족의 건국이념이자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이 되고 있는 ‘홍익인간’을 교육의 지표이자 바탕으로 설립하였다. 분단은 되었지만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동질성을 끝까지 지켜가도록 교육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신념에 국민개학(國民皆學), 국민개병(國民皆兵), 국민개로(國民皆勞)를 바탕으로 한 건학정신을 내세우며, ‘구국, 자주, 자립’이라는 창학이념과 ‘진리·봉사’라는 교시를 가지고 교명을 ‘단군(檀君)’에서 ‘단’과 ‘애국(愛國)’에서 ‘국’을 합쳐 ‘단국(檀國)’으로 정했다.
설립자 혜당 조희재로부터 토지 80여만 평(1953년 당시 1억환 상당의 재산)을 받아 1947년 9월 15일 단국대학 설립준비위원회는 재단법인의 설립을 정식 신청하였는데, 1947년 11월 1일 정부로부터 재단법인 단국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았다.이로써 광주 학생 항일 운동(현 11·3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날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설립자 장형은 평소에 가졌던 의지대로 1947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의 날’에 「단국대학 설립취지서」를 발표하고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에서 2학부 5학과(법정학부 : 법률학과, 정치학과 / 문리학부 : 사학과, 수학과, 물리과)로 개교하였는데, 뜻밖에 개교하는 날, 지병을 앓아오던 설립자 혜당 조희재 여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11월 29일 대학장으로 애석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1947년 11월 1일 정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을 정식 인가를 받아 11월 3일 개교하였다. 1947년 11월 30일, 단국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장도빈이 취임하였고, 12월 1일 제1회 입학식을 휘문중학교(현 휘문고등학교) 강당에서 가졌으며, 1948년 3월 1일, 학생회 문화부에서 단대학생신문(현 단대신문)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학교 또한 피난을 하게 되는데 1951년 9월 부산 동대신동에서 피난학교를 개강하였고 제1회 졸업식과 제2회 졸업식을 피난터에서 거행해야만 했다. 1953년 9월 28일 부산에서 서울 성동구 신당동으로 복교하고, 1954년 2학부 5학과를 3학부 8학과로 증설 인가 받았다. 1955년 2월 9일 교가를 제정하고 발표회를 가졌다.
서울캠퍼스 시기
1956년 3월 10일 대학설치기준령에 의거하여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토지 15만평을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의 38,986평과 교환하여 신교사 신축공사에 착공하였고 다음해인 1957년 6월 17일 한남동 신교사 입교식을 가졌으며,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신축교사로 모두 이전하였다. 1958년 7월 22일 도서관을 개관하였고 1958년 8월 29일 대학원 설치가 인가되었는데 법률학과, 정치학과, 국문학과 각 10명이 배정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시기 단국대 학생들 또한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하였는데 학생이라는 제한적인 신분에서 시위학생들과 시위군중들은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된 혁명의 지도력을 갖지는 못하였으며 사회인 신분으로 4·19 혁명에 몸소 체험하였던 동문인 시인 신동엽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시에서 4·19 혁명으로 잠깐 맑은 하늘이 빛났었으나, 민중들은 한번도 맑은 하늘 아래서 마음껏 자유와 평화를 누려 보지 못했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4·19 혁명의 성지인 ‘국립 4.19 민주묘지’에는 김성수, 안의남, 지인교 등 단국대 동문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단국대 총학생회는 4·19 혁명 기념 걷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해마다 행사를 마련하여 기념하고 있다.1967년 2월 10일 종합대학으로 승격됨에 따라 단국대학이 단국대학교로 승격되었고, 초대 총장에 36세의 나이로 장충식 학장이 취임하였다. 1972년 사범대학을 신설하였고, 1977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일대의 토지 6만평을 매입하여 천안캠퍼스가 착공에 들어갔고, 1978년 천안캠퍼스에 5개 학과를 신설하고 3월 개강하였는데, 천안캠퍼스의 설립은 전국의 대학 중 최초로 제2캠퍼스를 설립한 것으로 다른 대학들의 제2캠퍼스 설립에 기폭제가 되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기 천안캠퍼스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최덕수 열사를 비롯하여 단국대학교 학생들도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이처럼 단국대학교는 숭고한 독립운동정신을 이어온 민족사학의 요람처럼 학생들의 의식은 늘 민중의 문제와 공유하여 왔다. 김구의 건국실천원양성소 설립에 직접 참여한 장형은 경험 등이 광복후 최초 정규4년제 대학으로 기록된 단국대학교의 정신적 모태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2001년 11월 15일, 석주선기념박물관이 17세기 추정 조선시대 어린이 미라·의복을 발굴하였다. 2002년 3월 1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울캠퍼스에 TESOL대학원을 개원하였다. 2004년 4월 2일, 산학협력단 법인을 설립하였고 2006년 4월 28일, 신 UI선포식을 개최하였다. 2007년 2월 22일에는 A+비전 2017 선포식을 가졌다. 창학 60년, 한남동 생활 50년의 족적을 남기며 수지 신 캠퍼스의 준공식을 갖고 경기도 용인시의 수지캠퍼스 시대를 열었다.새로운 수지캠퍼스에서 맞는 첫 인사 이동으로 2008년 1월 3일, 13대,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제8대 박석무(朴錫武) 이사장에 이어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한 박유철(朴維徹,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의 손자) 전 국가보훈처 장관이 9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1년 6월 15일, 제10대 이사장에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와 국회의원(12대)을 지낸 김학준 동아일보 고문이 취임했다. 그리고 단국대학교 총장으로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제14대 권기홍(權奇洪) 총장에 이어 설립자의 손자로 천안캠퍼스 부총장이었던 장호성(張淏星) 교수가 2008년 2월 18일 제15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08년 11월 1일, 천안캠퍼스 민자기숙사 단우홀이 개관되었고 2009년 1월 2일, 죽전캠퍼스 민자기숙사 웅비홀이 개관되었고 2009년 1월 2일, 죽전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 인가를 위한 대학원동이 준공되었다. 2009년 8월 25일, 단국대 WCU 나노바이오의과학연구센터 & 서울대 WCU사업단 공동으로 2009년 8월 25,26일, 천안캠퍼스 국제회의장에서 교육과학기술부 후원과 함께 ‘2009 WCU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2009년 12월 11일, 약학대학 설립 신청서를 교과부에 제출했고 2010년 2월 중순에 서류심사에 1차 대학으로 선정돼 2월 24일 교과부로부터 2차 현장 실사를 받고 2010년 2월 26일, 최종 신설대학으로 선정되었다.
학교에서는 약학대학 설립 유치로 천안캠퍼스에 의대, 의대병원, 치대 치대병원 첨단과학대학과 공학대학 내의 다양한 기초 생명과학전공과 WCU 등 생명과학관련 연구소가 있는 상태에서 약학대학이 설립되는 만큼 천안캠퍼스를 의·생명과학 클러스터로 발전시켜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신약개발 분야의 창조적인 약학전문인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보건의료 전문인 양성을 위해 장기적으로 1,000억원을 상회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2017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제2 창학을 선언, 죽전캠퍼스는 IT(정보통신)·CT(문화콘텐츠) 학문분야 특성화를 골자로 문(文)·사(史)·철(哲)에 바탕을 둔 인문사회분야와 IT소프트웨어, 응용공학, 도시환경건축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죽전캠퍼스는 지리적 이점과 인적·물적 인프라를 활용하여 세계 최고의 4차산업혁명 클러스터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2016년, SW디자인융합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천안캠퍼스는 BT(생명과학)·외국어 특성화를 통해 차세대를 선도할 의·치학, 약학, 나노 및 생명과학 분야를 중점 지원하고 외국어 분야의 실용적 교육 강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한다. 산학협력선도대학 사업에서 4년 동안(2012~2015) 전국 최고 점수를 획득했고 지역 내 오송생명과학단지, 대덕연구단지 등 BT 관련 연구 기관과 협력하여 세계 최고의 메디바이오 산학협력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또한 캠퍼스 내에서 외국인과 즐기는 ‘DKU ISS’를 통해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종로캠퍼스
1947년 11월 3일,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 서북회관(후일 조선정치학관)에서 2학부 5학과로 개교를 하였던 단국대학교는 사용하던 건물이 건물주가 바뀌면서 2년 1개월을 마감하고 1949년 12월 26일, 성동구 신당동으로 옮겨 당시 조선전기주식회사(한국전력 전신)의 관사(7백여 평)에 잠시(6개월) 생활하였다. 이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피난생활이 시작되면서 부산에 임시 캠퍼스가 설치되었다.
서울캠퍼스(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국 전쟁 중 부산 피난시절을 거쳐 서울로 돌아온지 2년 6개월만에 논산에 있는 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부지를 마련하였다. 1956년 3월 10일, 신교사 신축공사를 착공하였고 1957년 7월 12일, 신교사 완공으로 서울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이곳에서 50년 동안 정착하며 1958년 대학원 설립, 1967년 종합대학 승격, 1978년 한국 내 최초 제2캠퍼스(천안) 설립 등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중견 대학으로 성장, 대학의 기틀을 잡았다. 현재는 서울캠퍼스가 있던 곳에는 부지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개발에 대한 찬반 논란 끝에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서 이미 고급 주택 단지가 개발되었고, 서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중소기업은행이 들어서있다.
=== 죽전캠퍼스(용인시 수지구) ===
재단의 어려움으로 서울캠퍼스를 매각하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수지)로 이전하게 된다.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는 1995년 6월 7일, 교육부의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이전계획이 인가되어 1996년 7월 19일 단국대학교 수지 신 캠퍼스 건설 기공식을 가졌지만 건설사와 재단의 부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어려움을 겪었다.하지만 교수와 학생 그리고 재단과 동문 등의 적극적인 노력과 성원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어 2007년 8월 30일, 준공식과 함께 서울캠퍼스가 수지캠퍼스로 이전이 완료되었는데 이전사업에는 모두 3천147대의 차량과 연 인원 7천480명이 투입돼 실험용 생쥐, 장서 93만여권, 유물 2만2천여점, 악기류 등 1만4천290t의 화물을 실어 날랐다.
대형 운반이 가능한 5톤 트럭만 2300여대 분 화물의 포장과 운송을 위해 전문 인력이 160여 명과 대형 크레인, 택배차량이 투입되었다. 10년 이상 표류되었던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어 2007년 8월 30일, 경기도 용인시 법화산 자락에 새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죽전캠퍼스는 정문 성현마을에서부터 후문 하늘마을까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에 조성된 캠퍼스로, 캠퍼스 안에는 탄천(炭川)의 본 지류인 내대지천이 북류하여 성복동에서 발원하는 성복천(星福川)과 합수된다. 법화산(法華山)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어서 주위에 낮은 산세를 만들고 있다.학교부지 용인군 수지면 1,010,385m2(약 30만평)에 세워진 단국대학교 수지캠퍼스의 설계는 1995년 신 캠퍼스 마스터 플랜을 국제 공모하여 공정한 공개 심사를 거쳐서 외국의 작품을 따돌리고 서울대 김진균 교수의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정문과 상징탑은 많은 작품중 성신여대 노재승 교수팀의 작품이 공모결과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는데 작품의 내용은 단국대학의 전통마크와 심벌마크, 책의 형상을 바탕으로 ‘공존의 장과 역사와 미래, 화합의 장 그리고 화합·융화·소통’의 의미를 담았다. 현대적인 조형미와 더불어 미래로 향해가는 단국인의 힘찬 기상과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단국대학의 전통마크와 우주의 합일을 뜻하는 ‘천·지·인’의 세 가지 형태가 주요 모티브이다. 천지인 등은 원(○)과 방(□), 각(△)으로 표시하기도 하는데 천지인 삼재를 바탕으로 생긴 원리를 형상으로 상징탑 아래에 조형하여 놓은 것이 이채롭다. 특히 천지인 등은 대표적인 한민족의 중심사상으로 천지인(天地人) 일체사상에서 국기로 사용하는 초기 태극기의 원형인 삼태극으로 이어졌고 천지인 3개의 기호만으로 모음을 표현해 과학적 원리에 따라 한글과 태극기가 만들어졌기에 단국대학교의 교기와 함께 한국인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우주 상징의 삼원(三元)·삼재(三才)이다.
정문의 폭은 32m, 높이 7.8m이고 상징탑은 높이 14m, 정문과 상징탑의 거리는 45m이다. 이러한 정문과 상징탑은 민족의 시원을 밝히고 단국의 전통마크를 상징하는 원형 구조 위에 민속전래의 오행사상과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탑을 설치하여 세계와 미래를 향한 단국의 기상과 희망을 표현하였다.
기둥의 상단에는 단국대학의 심벌마크를 입체적으로 구성 및 설치하고, 기둥의 하단과 심벌마크 주위에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주간 및 야간의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단국인과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수지 신캠퍼스 안내참조)
공간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단국대학교는 서울캠퍼스 시대를 마감하고 용인시 수지읍에다가 탈서울이 감행되어 용인시 수지구의 단국대학교 수지캠퍼스로 이어갔다. 이후 용인시 수지구의 단국대학교 캠퍼스 이름은 타 지역 일부 주민들의 부동산 투기 과정 도중 아파트값을 올리기 위해 자의적으로 단국대학교 수지캠퍼스가 위치한 수지로 아파트 주소 무단변경 문제를 주도했고 수지캠퍼스는 이들로부터 부동산 투기 속에서 죽전캠퍼스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죽전캠퍼스(죽전동)는 IT(정보기술)ㆍCT(문화영상기술) 분야 특성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서울 지하철 8호선의 단대(丹垈)오거리역은 단국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학교 측에서도 약도 등에서 공식적으로 이를 표기하고 있다. 천안캠퍼스는 약대 신설과 함께 공사에 돌입한 약학관은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1만 1340m2 규모로 건립됐으며 실습제약공장, 실험동물실, 공동기기실 등 첨단 설비와 최신 연구기자재를 갖추고 있다. 약용식물자원 확보와 효율적 이용을 위해 캠퍼스 내 제1약초원과 청양 소재 부속농장의 제2약초원도 함께 운영한다.
이처럼 2007년 7월 학교이전을 기점으로 1,010,385m2(용인시 수지구, 약 30만평 이상)과 658,953m2(천안시 동남구, 약 20만평 이상)의 2개 캠퍼스로 조성하면서 이러한 특성화의 토대 위에 교육, 연구, 재정, 국제화, 그린캠퍼스, 사회공헌 등 6개 분야 로드맵을 구축해 이미 실행에 들어갔다.
죽전캠퍼스 웅비홀 기숙사건물규모 지하 1층, 지상 10층에 1인실 6명(장애인), 2인실 1,068명으로 총 1,07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60석 규모의 지하열람실, 2개의 세미나실, 체력단련실과 세탁실, 식당, 매점, 택배보관실, 스낵코너 등의 생활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죽전캠퍼스에 공공기숙사 건립죽전캠퍼스에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공공기숙사를 짓는다. 공공기숙사는 1만3182m2 부지에 지상 10층 규모로 건립돼 928명을 수용한다. 2013년 9월 착공해 2015년 3월 입주가 시작된다. 공공기숙사 기숙사비는 월평균 19만원 수준으로 기존의 사립대학 민자기숙사비인 평균 34만원에 비해 15만원가량 저렴한 수준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학교에서는 저소득층, 장애우 등에 대한 별도의 지원 방안을 수립해 기숙사의 15%를 소외계층 학생에게 우선 배정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의 기숙사비를 최대 50%까지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퇴계기념중앙도서관도서관은 1947년 11월 3일 대학의 설립과 동시에 개관, 지상6층 연면적 5,613평의 규모, 2,431석의 열람석 보유, 고시생전용열람실, 대학원열람실, 그룹 스터디룸(14실)등 별도 운영, 한국 내외 단행본 873,301권의 장서와 국·내외 학술지 1,400여종, 30여종의 전자저널, Web DB 및 e-Book을 소장, 그 밖에 어학용 Audio, Video, VOD, CD-ROM, DVD 등 약 16,000여점의 전자 자료와 멀티미디어룸(3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자료실, 이용자용 컴퓨터 및 원문검색코너가 별도로 조성되어 대학가에서 최신식 도서관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퇴계기념중앙도서관은 2007년 7월 30일 죽전캠퍼스로 이전, 지상 6층의 총면적 18,555m2의 규모로, 2,504석의 열람좌석을 갖추고 있으며, 대학원열람실 및 그룹스터디룸(14실) 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통합형 전자도서관을 구현함으로써 온라인을 통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도서관은 90만여 권의 장서와 국·내외 학술지 1,100여 종, 12,000여 종의 전자저널, 30여종의 Web DB를 소장하고 있으며, 전자정보자료실에는 DVD, CD, Video ·Audio Tape등 약 20,000여 점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보유하고 있고 분관으로 법학전문도서관이 2009년 4월 827m2 규모에 180석의 열람좌석과 4만여 권의 장서를 갖추고 법학전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